사진이 없다시피 한다.
자다르의 첫날은 플리트비체 트레킹과 숙소찾기에 진을 다 빼서 노을만 보고 숙소로 들어갔던 날이고 둘째날은 비가 와서 사진 찍는 것은 접었던 날이다.
크로아티아로 출발하기 전 확인했던 날씨와는 다르게 내내 화창했던 날들, 유독 비가 왔던 곳이 자다르 둘째날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라는 인간도 비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우산이고 비옷이고 모두 집어던지고 그냥 비를 맞아볼 껄 하는 생각도 이제와서야 했다.
여기와서 미세먼지 이렇게 들이키고 있을 줄을 모르고 그 비 맞는 걸 피했다니..
자다르는 오로지 나의 의지로 선택한 도시. 이스트라쪽으로 가깝기 때문에 이스트라로 몰아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을텐데 그 다음이 언제일지, 과연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번에 가기로 맘먹었다.
노을, 그 하나만으로는 망설였을텐데 '태양의 인사'와 '바다오르간'이 궁금했다.
자다르의 노을, 봤다.
눈앞엔 넓고 깊은 바다와 하늘인데 그 먼 경계에는 구름이 먼저 자리를 잔뜩 잡고 있어 노을은 서둘러 사라졌다.
자다르가 특별한 것은 그래서 노을때문이 아니다.
여기에 태양의 인사는 완전히 해가 저문 뒤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데 그 시간엔 숙소에 있었고 바다오르간 소리는 신비롭고
깊은 바다의 소리를 들려주는 듯 했지만 푸욱 빠져들만큼 여건이 여유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자다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플리트비체에서의 일정이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H코스의 소요시간은 6시간가량을 보통 보는데 일행이 있고 내 걸음이 워낙 느리니 더 소요될 줄 알았다. 자다르의 노을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아침을 서둘러 플리트비체 개장시간에 딱 맞춰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이런, 코스의 일부가 폐쇄되어 트레킹 시간이 확 줄어버렸다. 그나마 축소된 일정이 그리 아쉽지 않았던 것은 자다르의 노을을 여유있게 준비할 수 있을거라는 셈때문이었다.
자다르는 숙소를 정하지 않고 가는 곳이라서 더더욱 시간이 필요했다. 가는 도중 숙소를 검색해서 몇개를 골라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예약하기로 했다. 예전 여행에서 이렇게 숙소를 잡았던 것이 즐거웠던 동행의 추억처럼.
자다르 입성, 논쟁이 숙소를 먼저 잡느냐 아니면 낼 아침식사거리를 먼저 사느냐, 아니면 관광을 먼저하느냐였던가. 분명 논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논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자다르 구시가지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있을 때 난 논쟁과 상관없이 경찰관을 붙들고 뭔가를 물어던 듯 싶다. 태양의 인사를 어떻게 가야하는지가 더 궁금했었을까? 그리고 일행들의 입담에 다시 휩쓸렸을 때 그 경찰관이 어깨를 툭툭친다. 제복과 큰키, 너댓명이 떼로 있어 얼어서 물어봤는데 자신의 답변을 보충해주러 일부러 와줬다는 것.
결국, 검색된 숙소로 먼저 향했다. 3시쯤이었으니. 아직 여유가 잔뜩 있다.
숙소가 있다는 지역은 온통 '숙소(sobe..)'들이었다. 자다르 초입부터 그랬는데 뭐..
아직 신뢰감이 형성되지 않은 유럽산 '네비'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눈먼 봉사가 길을 찾아가듯 뱅뱅 도는 듯한 느낌을 안고 찾아갔으나 결국 막힌 골목길에서 멈춰야했다.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특별한 자다르를 만났다. 각자의 집 정원에서 볼 일 보던 4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모여들었고 헤매지 않도록 직접 길을 걸어 인도해주었다. 그들에겐 여유로운 시간들중에 심심풀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단비 같았던 친절.
그렇게 찾아간 숙소는 주인을 만날 때까지 오래동안 기다려야했지만 일행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다시 낯선 골목길을 헤매고 있을 때 나타난 한 청년, 우리가 고른 다음 숙소까지 안내해준다. 또 그가 먼저 길을 걷는다. 숙소가 눈앞에 보일 즈음, 그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그 동네, 맘에 들어버렸다.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 현장에서 잡은 숙소는 젊은 단체 투숙객들 덕분에 밤새 시끌벅쩍.. 피곤해서 잠에 골아떨어질만도 한데 그 요란한 소리에 얇은 잠에서 헤매고 말았다.
자다르 이틀째,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구시가지의 정취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고 있는데 종소리가 귀와 눈을 끌었다.
이미 몇 개의 종소리가 때를 맞춰 울리고 난 뒤였기에 새롭지도 않을터인데 뭔가가 달랐다. 그리 높지 않은 종탑에서 사람이 종을 치고 있었다. 이 분 참 길게 종을 친다. 우리를 위한 것인가 싶을때 그가 이번엔 하모니카를 불면서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종탑까지의 거리가 있었기에 그 손짓의 사인을 긴가민가하면서 종탑 아래까지 달려갔다. 올라오란다. 친절히 종탑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좁고 애매한 통로를 손짓으로 가르쳐준다.
종탑, 몇 번 오르지 않았던가, 경치를 보기 위해 돈 주면서까지. 그러나 이렇게 종을 치고 있는 종탑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다. 망설이고 거절할 이유가 없다. 비둘기똥과 오래된 먼지로 가득한 사다리와 층들을 올라갔다. 그리 높지 않다.
그는 우리를 위해 종을 계속 쳐주었다. 그리고 종을 쳐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고 그 늙고 두터운 손을 내손에 포개 종을 치는 그 리듬을 들려주었다. 종을 두드리는 손의 감각은 흉내낼 수 없었었다. 어떻게 그 묵직한 쇠를 그렇게 가볍고 빠르게 다루는지... 유독 이 종소리에 귀가 쏠렸던 것은 오래된 사람의 손에 의해 울렸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꿈꿔볼 수 없었던 종탑에서의 추억.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셨던 그 할아버지의 따뜻한 호의 덕분이었다.
자다르, 또하나의 기억은, 둘째날 자다르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입구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어느 건물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카네이션을 들고서.
광장에서 멈춘 사람들은 간단한 모임을 하는 듯 했고.. 이 비오는 날,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탐색했지만.. 눈치빠른 일행이 집회라고 한다. 아~ 설마.. 여기서 집회를 보게 될까? 그리고 아직 아침이라고!
간단한 모임을 마친 그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한송이 카네이션을 건네주며 "Happy May Day", "Happy LABOR DAY" 아. 5월 1일, 노동절이다.
나이 마흔 여덟되는 해에 노동절을 행복한 날로 기억하는 것을, 축하하는 것을 봤다.
자다르 주차장을 검색해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자다르에 머문 게 주말이라 주차비를 따로 내지 않았다. 주말엔 주차비가 무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지도에 빨간선으로 표시한 해안선.. (빨간선을 더 아래로 그었어야 한다~) 주말에는 구시가지(들어갈 수 있는 구역도 일부지만)로 차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건 주말에만 해당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토요일 노을을 보기위해 갔을때도, 일요일 관광을 위해 주차했을때도 주차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 방문시기가 아직은 비수기이고 일요일은 제법 비가 많이 왔었다는 것을 참작해줘야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바다오르간이 있는 해안선쪽은 아예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주차를 대부분 숙소에 했기때문에 주차비를 낸 적은 토르기르 뿐이었다. 토르기르 주차장에서 주차비를 정산하지 않은 어떤 차량이 한참을 출구를 막고 있어서 그 좁은 주차장이 때 아닌 장날을 맞았었다. 그 차를 보고 주차비 정산이 복잡할까봐 지레 겁을 먹었었는데 주차비 정산기가 주차장 한쪽에 있어서 출차하기 전에 먼저 정산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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