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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광주에 다녀와서

by 파란비 2008. 6. 10.


왜 가지 못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부딪히기 싫어서. 분명 아빠는 뭔가 한소리(가장 상처입히는)를 내뱉을 거다.
그 한소리가 참 무서웠다. 한마디 말로도 사람을 예리하게 상처입히는데 일가견이 있는 아빠이니까.
둘째는 그 한소리일지, 열소리일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난 아무말도 못할거라는 그 한심한 상황을 또 만들기 싫어서.
난 아빠를 그 27평의 공간에서 숨박꼭질 하듯 숨어 다닐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마주쳐 그 소리를 들었야 했을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에 점수를 줄 수 없기에.
세째는 다 냅두고, 돌아가시기 전에 말해주고 싶은데 말할 수 없기때문에.
아빠로 인해 얼마나 슬펐는지. 아빠때문에 얼마나 아팠는지, 아빠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많은 절망을 느꼈는지.

전화로 전해오는 엄마의 지치고 외로운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광주가는 길을 차일피일 미루다
아침에 걸려온 엄마 전화엔 드디어 항복하고 말았다.

벌써 두차례의 응급상황과 격한 통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은 알고 있지만
어제부터는 혈변과 각혈부터.....
내려가는 길. 참 버거웠다.
아빠를 보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런데 병실밖에서 아빠의 신음소리만 듣다가 왔다.
검사실에 들어갔다 산소호흡기만 달고 나왔다는 아빠는 간호사와 의사가 들락거리는 병실안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내 감기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안도하면서
병실밖을 우두커니 서있을 수 밖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땐 그 눈물에 이유가 있었는데 왜 지금은 생각이 안날까.
죽음을 맞이하는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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