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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위내시경, 상상이하.

by 파란비 2009. 12. 31.
2009년을 이틀 앞두고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여전히 망설여지지만 계속 미룰 수만도 없는 직장인.

건강검진센터의 상담원 앞에서 티가 제대로 보였나보다.
'위내시경 처음이신가봐요^^'
수면내시경은 1시간이나 마취상태가 지속된다고 해서 패스하고 냉큼 일반내시경을 선택했다.
이럴수가! 내가 위내시경을 받다니 그것도 쌩으로...

큰병 앓아 아프느니 눈 딱 감고
예방차원에서 잠깐 아프고 말자라는 장한 결심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쭈~욱 기타의 검진 코스들을 돌아 위내시경실앞.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 순번만 예약을 걸고 다른 검진까지 다 마치고 오니 바로 내 순서.
헉. 아직 마음의 준비가... 들어서자마자 엉덩이 주사를 맞는단다. 이건 뭐지.
'장이 움직이지 말라고 맞는 주사네요, 따끔하네요'

그리고는 쭈욱 마시라고 약간의 멀건 약을 준다. 이건 또 뭐지... '가스제거해요'
맛도 느끼기 전에 누우란다. 목을 뒤로 확 제치고... 그리고 입에 마취제를 부워주는데 삼키지말란다.
5~10분 정도 흘렀을까 침을 몇 번인가 삼키고 싶었는데 이 약때문에 불편하다. 
그 불편은 그런대로 참겠는데 얇은 칸막이 너머의 옆방에서 들리는 '우엑, 끄윽.....' 설마 나도 저런 소리를 내면서...

입에 머금고 있던 약을 뱉고 밖에서 부를때까지 기다리란다. 
문을 열고 나가니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나의 상태를 쫘악 훓는데^^
그들의 표정은 딱 한가지를 묻고 있다. '그 안에서 무슨일이?'

잠시 뒤, 드디어 나를 부르는 소리.
가운데 놓여있는 침대만 보인다. 안경 벗고 옆으로 누워 의사를 기다리란다.
'저, 트림이 나오면 참아야하나요'라고 의사에게 물을 참이었는데
의사가 내 앞에 앉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용도로 쓰이는 뭔가를 입에 물린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바로 내 입에 내시경줄을 집어넣는데...

으윽... 어, 상상했던 고통은 아니다. 뭐 요건 참아보지하는데 벌써 목을 넘어간다.  
내시경 줄을 쭈~욱 집어넣을 때 2~3번 욕지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살짝 윽윽거리는 것으로 넘겨졌다.
내시경이 내려갈 때 서늘한 금속이 내장을 쓰윽 가로지르는 섬득한 느낌이 느껴지지만 그것도 잠시.
이게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지 싶을때 쭈욱 빼내는데 어라 너무 싱겁다.
누군가 흘렸다던 눈물도 콧물로 침도 흘리지 않았다.

바로 벌떡 일어나 내 식도와 위와 십이지장이 얼마나 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가벼운 염증의 증거들도 헤아려보고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그 방을 나왔다.  
오랜 세월 혹사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내 내장들 덕분이기도 했지만
긴 세월 무서움증으로 피해왔던 대상을 정복한 느낌^^
위내시경, 할만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일반내시경만 쭈욱 하리라.
사실 수면내시경을 마치고 휠체어에 실려 옮겨지는 축 늘어진 분들을 봤는데 그게 더 힘들어보였다는.

근데, 왜 주사는 여전히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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