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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올레 5코스 나머지 절반

by 파란비 2009. 3. 8.

어제 마지막으로 본 올레표시를 찾아 그 앞에 서니 한 번 봤다고 표시도, 길도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 표시를 쫓아 오늘의 올레를 시작~

몇발자욱 못 가 길이 왠지 익숙하다 했더니 왔던 길을 도는 형상^^
급할 것 없으니 이것도 웃는다.
조금이라도 빠른 길을 찾아 살아온 오랜 습관의 강박에서 약간 벗어난 것이 아닌가.
올레 사이트에서 본 적이 있는 황금분식, 글로 봤다고 친근하게 느껴지는게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점심을 가볍게 먹은 아이를 꼬드겨 라면을 먹기로 했다.
주문해놓고 보니 메뉴에 멸치국수가 있다. 메뉴판이라도 한 번 보고나 주문할 껄.. 이 놈의 성미는 아직도 그대로다.
라면은 2,000원, 멸치국수는 3,000원.
아이가 가게유리문에 썬팅된 글자에 관심을 갖는다. 고드름.
옛날엔 그 메뉴가 있었단다. 여름엔 얼음을 갈아서 그대로... 지금은 그렇게 글자만 남아 추억이 되고...  
TV속 무한도전에 잠시 눈을 빼앗긴 아이 것까지 한 입 더 뺐어먹고야 젓가락을 놓았다.

쇠소깍의 태우를 탈려면 어제보다는 좀 더 부지런히 걷자며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초입부터 그 부지런함은 멀리 던져져버렸다.
아이는 어제 '물수제비 뜨기 내기'에서 벌칙으로 쌓인 군밤 3대를 감해달라며 '네잎클로버 찾기' 내기에 나서고
얼떨결에 그러자 한 것이 여섯잎까지 찾아가며
어제 쌓아둔 벌칙을 모두 덜어낼 때까지 클로버밭에서 꿈쩍을 안한다.

잠시 길을 잃었다. 아마 낚시하던 분들에게 시선을 주고 오다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이젠 제주 길이 그리 무섭지 않은지 그냥 걷기로 했다.
그렇게 걷다 다시 만난 올레표시. 마음이 더 느긋해진다.

천천히 걷는다고 걷는데도 아쉽다. 걸음뒤로 풍경들은 차곡 차곡 쌓여만 가고.  
그냥 한나절이고 반나절이고 오래 서서 그 풍경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버리고 싶은 때도 있으니.
욕심이 어느덧 마음에 스민 것, 내 아이와 함께하는 온전한 시간을 여기서 갖는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 욕심부릴 수 없는 순간.
마음에 스며든 것, 툭툭 털어내고 일어선다. 



길을 내기 위해 수고한 이들에게, 길을 가꾸기 위해 수고한 이들에게 
이 길을 걸으며 행복한 이 순간에 우리가 그들을 기억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5코스, 아이랑 실컷 놀면서 걸었다. 이틀 6시간동안.
바다. 하늘. 햇볕. 바람. 바위와 돌. 파도. 숲. 꽃. 새. 동네 개들과 만나면서,
그리고 사람과 만나면서, 사람의 따뜻한 노동과 만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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